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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에 대해 알아보자

돈마니해피4 2022. 8. 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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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체계 기원

기원전 3,000여 년 전에 당시 천하를 다스리던 복희(伏羲)씨가 하수(河水, 黃河)에 출현한 용마(龍馬)의 등에 있는 55개의 점을 보고  천문(天文)과 지리(地理), 인사(人事)의 이치를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도(道)로써 형상(形象)하여 팔괘(八卦)를 작성해서 역(易)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문자가 없던 시대이므로 복희씨는 하도를 보고 하늘을 상징해 ⚊ (양)을 만들고, 땅을 보고 다시 ⚋ (음)을 그었으니 음양체계가 기원하였다. 

헌원 황제 때에 치우천황(BC 2706년)이 중원에 나와 전쟁을 하니, 황제가 치우 천황과 10차의 전투에서 9번이나 지고, 마지막 탁녹의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그러나 유혈이 백리에 뻗쳐 다스리기 어려움에 하늘에 제사 지내자 하늘이 십간, 십이지를 내리셨다. 황제는 십간을 원으로 포하여 천형을 상징하고 십이지를 방으로 포하여 지형을 상징하고 그 빛을 합하여 직문에 명하여 이를 널리 퍼지게 하니 그 후는 잘 다스려졌다. 후일 대요씨가 십간, 십이지를 합하여 육십갑자를 배성하였다. 

기원 전 1734년에 하늘에 목성, 화성, 토성, 금성과 수성의 오행성이 운집하여 오성취루(五星聚婁)를 이루며, 오행이 상극하는 별 모양이 생겼다. 태양계의 행성 가운데서 유일하게 서에서 동으로 역행하며 자전하는 금성의 숙살지기를 지닌 金이 지구상에 등장하며 오행상생에서 금이 목을 극하며 목극토, 토극수, 수극화, 화극금의 상극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명리학 탄생과 역학의 유래

​명리학이란 사람이 출생할 때 하늘에서 부여한 命인 年月日時와 살아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運을 통해 한 사람의 運命을 판단하는 것이다. 年月日時의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의 여덟 글자에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을 부여하여 한 개인의 운명(運命)을 예측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주역(周易)에 의한 음양학설이 먼저 존재했고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으로 태양계의 영향을 받는 오행성(五行星)으로 운명을 예측하는 오행학설(五行學設)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年月日時의 干支를 가지고 時間을 기록한 것은 동한(東漢) 순제(順帝)때인 서기126년 이후의 일이다. 

​당대에는 五星學이라는 별자리로 점을 치는 방법이 유행하였는데 이것이 자미두수로 발전하였고, 오성학은 동양의 음양사상과 결합하여 자평명리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역학의 유래는 전국시대 음양가 낙록자로부터 비롯한다는 것이 통설이다.  청대(淸代)시대의 『자평팔자사언집액(子平八字四言集腋)』에 의하면 명리학의 기원은 주(周)나라의 낙녹자(珞琭子)와 귀곡자(鬼谷子)라고 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 기원전 약 300년대 귀곡자의 귀곡자유문(鬼谷子遺文) :『귀곡자』는 영천(潁川), 양성(陽城)의 귀곡지방에서 은둔생활을 했기 때문에 귀곡자라 하였다. 귀곡자는 천지간의 현상은 천지를 생성하는 도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정한 법칙에 지배된다 하였으며,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상대방의 동정변화(動靜變化)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서는 『귀곡자(鬼谷子)』가 있다.

 

​귀곡자는 처음 간지를 체계화하여 명리학의 효시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월일만을 가지고 판단하였으며 훗날 당나라의 이허중이 귀곡자유문에 주석을 달아 이허중명서(李虛中命書)라는 책을 발간하였고, 귀곡자유문의 내용과 고법사주의 중요한 개념을 서술하여 고법사주의 토대가 되었다. 중국에서 연월일시의 간지를 가지고 시간을 기록한 것은 동한 순제東漢順帝(서기 126년)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세성歲星(목성)으로 년지年支를 기록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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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추정 낙록자의 낙록자소식부(珞琭子三命消息賦) : 훗날 서자평이 낙록삼명소식부를 만드는데 기여하였으며 신법 사주학의 초석이 된다. 『낙녹자』는 『낙녹자삼명소식부珞琭子三命消息賦)』가 있는데 이를 보면, 년을 근간으로 납음오행(納音五行)으로 운명을 본 것으로 추정한다.

​춘추전국시대 추연의 추자49편, 추자시종56편 : 추연은 맹자보다 조금 늦게 등장하여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을 제창하였으며 오행상생과 중국의 전통적 사상의 기초인, 木, 火, 土, 金, 水의 오행 상승원리로 세상의 사상이 일어나는 것이라 하였고 이에 미래에 대한 예견을 하였다. 추자(鄒子) 49편, 추자시종(鄒子始終) 49편의 저서가 있지만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한나라 기원전 170년 동중서의 춘추번로 : ​동중서는 한나라시대의 오행학자로 춘추번로를 통하여 오행음양설을 집대성하여 오행음양론의 체계를 완성시켰다.

 

동진시대(276~324) 곽박(郭璞)의 옥조신응진경(玉照神應眞經) : 동진의 곽박(郭璞)은 육임(六壬)의 원리를 이용하여 『옥조신응신경(玉照神鷹眞經)』에서 사주(四柱)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사람의 출생 연월일시를 사주의 간지로 표기하였으며 직업론과 길흉, 수요, 육친, 품성에 대한 기술을 하였고 신살(神殺)을 사용하였다.

​수나라(581~619) 소길의 오행대의(五行大義) : 오행대의는 수나라의 초기까지 전개되어 온 오행학설을 문헌을 토대로 하여 24종류로 분류해서 정리한 것으로, 오행의 정의에서부터 천문ㆍ지리ㆍ인사적 요소는 물론,각 동식물의 분류와 맛 오장육부, 왕조의 변천에 이르기까지 오행에 의하지 않음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주요 명리학자와 명리저서  

 

이허중(李虛中)의 이허중명서(李虛中命書) : 당나라 말기의 이허중(李虛中)은 귀곡자유문(鬼谷子遺文)에 주해를 달아 이허중명서(李虛中命書)를 편찬하여 고법사주학의 중요한 개념을 정리하였다. 태월일시(胎月日時)로 사주 기둥을 세우고 년본일주(年本日主)와 납음오행(納音五行)과 신살로 사주를 풀이 하였다. 일간을 중심으로 하여 사시오행(四時五行)의 절기와 휴왕(休旺)을 살펴 일간의 기의 강약을 판단하고 오행의 생극과 신살, 대운, 소운을 태세(太歲)와 섞어 길흉을 보는 법이다. 사주 상 오행의 왕상휴수(旺相休囚)와 납음오행(納音五行) 및 년간 위주의 방식으로 고법이라 한다.

 

한편, 당나라에는 사주명리학에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대표적 오성술(五星術)의 하나인『칠정사여성명학(七政四餘星命學)』이다. 『칠정사여성명학』에서 자미두수(紫薇斗數)와 금성역견(禽星易見)으로 갈라졌고, 자미두수와 금성역견에서 성반(星盤)을 없애고 오행만으로 풀어보는 학문이 고법 명리학인 삼명학(三命學)과 신법 명리학인 자평학(子平學)이다.

 

서자평(徐子平)의 낙록자삼명소식부주(珞琭子三命消息賦註), 명통부(明通賦) : 서자평이 어느 시대의 인물이고, 원래 성명은 무엇인지 기록은 불확실하지만 오나라말~송나라초 사람으로 추정된다. 삼명통회(三命通會)를 지은 明의 만육오(萬育吾)는 서자평이 활동한 년대와 성명과 자호(字號)에 대해서, 본명은 서거이, 자는 자평, 별호는 사척선생 또는 봉래수, 五代시대 인물이고 東海(지금의 강소성 동해현) 사람이고 은사였다고 밝히고 있다.

서자평은 珞琭子三命消息賦註, 玉照神應眞經註, 明通賦를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낙록자삼명소식부주』와 『옥조신응진경주』는 주석을 달면서 자기의 의견을 피력한 것이고, 『명통부』는 저술로 알려져 있다. 『낙록자삼명소식부주』는 서자평의 주석을 통해서 신법 자평학이 진면목을 드러냈는데 사주학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서자평(徐子平)의 연해자평(淵海子平) : 서자평(徐子平)은 연주(年柱) 중심의 사주학을 일간(日干) 중심으로 판단하는 이론을 창안하였다. 그의 후예 서대승(徐大升) 선생은 『연해(淵海)』라는 사주학의 저서와 함께 서자평 선생의 일간중심이론을 완성하였으며 그 후에 당금지(唐琴池)라는 사람이 <연해淵海>와 비결집 <연원淵原>을 합본하여 <연해자평淵海子平>이라는 책을 발행했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 오는 <연해자평>이다.

 

명나라초 유백온(劉伯溫)의 적천수(滴天髓) : ​적천수(滴天髓)는 원(元), 명(明)대의 유백온이 지은 것으로 현존하는 명리의 최고서로 일컬어지고 있다. 기존의 자평이론과는 다른 개념의 이론체계를 서술하였는데, 육친론이나 격국론 이론을 탈피하고 채용의 개념을 적용하였다는 것이 자평학과 적천수의 다른 점이며, 청탁, 진가,강유,순역등의 논리로서 사주분석의 이론을 설명하였다. 명사明史 예문지에 <삼명담적천수三命談滴天髓>라는 것이 실려 있는데, 그것이 명나라의 개국 공신 유백온이 지은 <적천수滴天髓>의 원본이다. 적천수(滴天髓)는 일간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월지를 모태로 함으로써 기후와 환경을 중요시하였으며 중용의 이치와 인간의 본성인 성(性), 도(道), 교(敎)를 제시하면서 통신론(通信論)과 육친론(六親論)을 주장하는 학문으로서 더욱 의미가 있다.

​명(明)대 만민영(萬民英)의 삼명통회(三命通會) : 명(明)대의 만민영(萬民英)은 1578년에 삼명통회(三命通會)를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12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분량으로 그 이전 시대의 명리서 들을 모아 집대성한 책이다.​ 삼명통회는 명리학의 고법과 신법의 이론을 모두 망라하여 기록된 일종의 명리학의 백과사전이라 할수있다. 만민영은 60갑자,납음오행, 간지의 정오행설,화기오행등의 여러가지 이런을 수록하면서 자평법의 부족한점을 보충한 학설이다. 후세의 사주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그시대의 사주학의 모든 이론이 대부분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내용으로는 격국(格局)에 따른 생극제화 및 신강신약을 포함시켜 격국론을 체계화 시켰으며 약 3500개의 사주실례를 통하여 연해자평(淵海子平)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 춘하추동에 따른 조후를 확립하였다.

​명(明)대 장남(張楠)의 명리정종(命理正宗) : 명시대의 장남(張楠)은 명리정종(命理正宗)을 저술하였는데 책의 서문에 이르기를 “서균(徐均)이 자평(子平)을 지어 일간을 위주로 근본을 삼아 월령에서 용신을 구하고 세시(歲時)로 보좌하였으니 이에 명서는 완전하게 되었다.” 라고 적고 있음을 볼 때 이는 연해자평의 이론을 수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명리정종(命理正宗)은 자평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특히 십간을 십이지지에 대입하고 모든 격국(格局)을 완성시켰는데 일반인의 실제사주를 각 격국(格局)에 대입하여 오류가 있는 내용은 비판 후 대안을 제시하였다.

​청(淸)대 여춘태(余春台)의 궁통보감(窮通寶鑑) : 궁통보감(窮通寶鑑)은 난강망(欄江網)과 조화원약(造化元鑰)을 原典으로 재편집되어 출간된 책이다. 특징으로는 십천간(十天干)을 각각 12개월로 나누어 그 특성과 특징을 설명하고 사주 상 필요한 용신(用神)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또한 궁통보감(窮通寶鑑)은 다른 명리서(命理書)보다도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과 풍수이론(風水理論)을 적용하였으며 기존의 명리(命理)이론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궁통보감은 명리학을 채용이론과 조후이론으로 크게 분류할때 조후이론에 속한다. 채용이론이 격국을 위주로하여 다소 형식에 얽매이는 한계성을 가진데 비해 , 조후이론은 자연을 위주로하여 인간을 자연으로 보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난강망의 내용은 10개 일간을 12달에 대조하여 필요한 오행글자를 배정한 내용이며, 기후의 배합과 득실을 살피는 내용이라고하여 조후용신의 금자탑이라 부른다.

청(淸)대 진소암(陳素庵)의 명리약언(命理約言) : ​명리약언(命理約言)은 청(淸)대의 진소암(陳素庵)이 저술하였으며 일간과 격국(格局)의 생극제화(生剋制化)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고서의 잘못된 오류부분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각종 신살(神殺)의 부당성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나아가 격국론(格局論)에 대하여 심도 있게 연구하여 자평이론(子平理論)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할 것인데 격국(格局)은 먼저 당령(當令)한 것을 취하고 다음으로 득세(得勢)한 것을 취한다 하였다.

​명리약언은 사주학의 격국과 용신등의 여러거지 이론을 간단한 하나의 공식으로 귀일시켜 놓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명리약언은 특히 사주를 보는 원리는 오행의 생극제화에 달려 있다는 주장으로 억부용신법을 피력하였다. 억부용신법은 현재사주학에도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할 정도로 사주의 강약을 보는 관점을 처음으로 체계화 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진소암은 <적천수> 원본을 주해한 <적천수집요滴天髓輯要>도 저술했다.

​​청(淸)대 심효첨(沈孝瞻)의 자평진전(子平眞詮) : 청나라 중엽에 심효첨(沈孝瞻)이 자평진전(子平眞詮)을 저술했 는데, 건륭 41년 병신년 1747년에 호공보가 이를 발행했다. 심효첨은 건륭 4년 서기 1665년 기미년에 진사에 급제한 사람이다. 

자평진전(子平眞詮)은 이전의 자평서(子平書)에서 나타난 신살(神殺)과 납음오행(納音五行)을 배제하고 일간 대비 월령을 심도 있게 고찰하여 격국론(格局論)을 완성하였다. 이와 같은 자평이론은 명통부(命通賦)에서 태동되었고 연해자평(淵海子平)을 통하여 기본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으며 삼명통회(三命通會)와 명리정종(命理正宗)으로 발전하여 자평진전(子平眞詮)에 이르는 결실을 이루었다.

​자평진전은 일간과 월령을 중심으로 용신 격국론을 좀더 세분화 했으며, 용신을 선과 불선으로 나누어 순용과 역용의 이론을 제시하였다. 또한 용신의 성패구응과 변화 격과 운과의 관계를 논함으로서 자평학의 이론을 좀더 구체화하고,체계화 시켰다. 현대 사주학의 입문서로 쓰이고 있다.

​청(靑)대 임철초의 적천수천미(滴天髓闡微) : 임철초는 건륭 38년 서기 1773년 음력 4월 18일 진시에 출생하여 73세 되는 1846년에 <적천수천미滴天髓闡微>를 저술했다. 적천수천미는 유백온의 적천수에 주석을 달아 좀더 세분화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간지를 음양으로 나누지 않고 오행으로 축소하여 간단하게 보는 법을 서술하고 있고, 512개의 풍부한 사주 실례와 사주해석의 내용까지 수록하고 있다. 특히 종격론(從格論) 중에 종왕격/종강격/종아격은 독창적인 이론이라 할 수 있으며 그중 종아격(從兒格)은 고전의 식상법(食傷法)으로 해결하지 못한 갈등을 해소한 이론이라 그 가치가 높다 할 것이다.

 

중화민국 서락오 : ​사주학의 3대 필독서라고 평가되는 적천수, 자평진전, 궁통보감을 평주하였고, 고금의 유명인물들의 사주를 해설하고 사주학의 연원을 밝히는 등의 일련의 저슬 활동을 했다. 서락오의 가장 큰 업적은 용신을 정하는 5가지의 원칙을 최초로 정립했다는 것이다. 억부용신,통관용신,병약용신,조후용신,전왕용신의 다섯가지의 용신 정하는 법을 자평수언에 담아 편찬하였다. 1935년에는 서락오가 <적천수징의滴天髓徵義>를 발행했는데 <적천수천 미>에서 진소암의 주석 부분을 삭제한 것이다. 그 후에 서락오는 다시 <적천수보주>와 <자평수언子平粹 言>을 저술했다

이 후 원수산이 명리탐원(命理探原)과 명보(命譜)를 저술했고, 현대에 와서 위천리는 명학강의(命學講義)와 팔자제요(八字提要)를 저술했는데, 위천리의 명학강의를 한국의 박재완 선생이 번역하여 명리요강(命理要綱)의 이론 체계를 세웠고, 위천리의 팔자제요를 번역하고 거기에 일지론을 첨가하여 '명리사전'을 만들었다. 한국의 사주학 대가로는 이석영 선생과 박재완 선생이 있는데, 이석영 선생은 사주첩경(四柱捷徑)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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